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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의 달」의 다짐 
 취재부 | 기사입력 : 16-08-17 10:08
 
 
마포신문사 편집국

8월은 광복의 달이다. 한 해, 한 해, 살아가면서 이런 발자국, 저런 발자국을 남긴다. 모래 위에 난 발자국 같이 지워질 수 있으면 좋으련만 부끄러운 발자국을 지울 수 없어 후회하고 또 후회한다. 하지만 다시 돌아오는 내일이 기에 새롭게 살아간다.
  우리 사회는 지금 몹시 들끓고 있다. 마치 용광로 속과 비슷하다. 고열로 끓을수록 융합이 잘되는 것이 용광로지만, 한국사회의 용력(用力)이 과연 지금의 지역 · 계층 · 세대 · 성 사이의 심각한 이념적 · 문화적 대립과 반목을 화합으로 이끌 수 있을지 적이 걱정스러운 느낌이다.
 물론 그러한 사회갈등이 반드시 해로운 것은 아니다. 갈등이 없는 사회는 긴장과 불만을 풀어내기 어렵다.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짚어주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혁신의 노력을 기울일 수 있다는 점에서 갈등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최근 사회성원들 사이의 대립과 반복이 상오공존보다 정면충돌의 모습을 자주 보여주고 있기에 문제가 심각하다.
 특히 해방정국이 떠오른다. 당시 좌우는 극단적인 이데올로기 대립아래 격돌함으로써 격심한 정치혼돈이 나타났다. 여러 정치세력들은 해방과 독립이란 대명제를 놓고 정파적 이해에 따라 갈라졌다. 남로당의 모험주의, 이승만의 단독노선, 한민당의 친미추구, 임정세력의 합작거부 등이 그것이 아닌가. 결국 한반도에 미국과 소련으로부터 직 · 간접 후원을 받은 두 개의 정부가 세워짐으로써 국토분단과 체제대결을 가져왔다. 우리 민족사의 비극인 한국전쟁은 그 정점에 있다.
 좌우합작의 시도가 전혀 없지는 않았다. 미군진주 이전 건국준비위원회는 사회주의부터 민족주의 진영까지 포괄해 식민잔재 청산과 자주 독립국가 건설을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북조선로동당과 연계된 남로당의 독선으로 인해 민족주의자들이 탈퇴함으로써 좌우를 아우르는 새로운 정치세력화의 길은 무산됐다.
 역사는 되풀이된다고 할까. 지금 우리는 해방이후보다 격렬한 사회갈등과 혼란을 본다. 그것은 단순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사이의 좌우대립 이상이다. 지역과 계층, 세대마다 서로 다른 문화와 정서 안에 체제분단의 모순이 녹아 있는 것 같다. 사회갈등이 복합적이다. 햇볕정책 이후 남남갈등에서 볼 수 있듯이 갈등의 중앙에 북한이 또한 등장한다. 좌우를 막론하고 북한을 받아들이면 진보고, 그렇지 않으면 보수라는 흑백논리가 횡행했다. 진보의 혁파성과 보수의 안정성 사이의 균형이 깨져 버렸다.
 우리사회에서 중도는 흔히 회색분자라는 인식이 따른다. 지배세력과 반대세력 사이에서 기회주의적으로 처신한 개인과 집단이 중도를 표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도는 원래 어려운 길이다. 좌우 극단을 비판하다 보면 두 쪽에서  욕을 먹게 되어있다. 중도라고 해서 시시비비를 비켜가는 것은 아니다. 참다운 중도는 좌우의 산술 평균을 넘어 경쟁과 타협을 유도한다. 좌우 사이에서 중용을 찾기보다 균형을 맞추려는 형평의 역학을 추구한다.
 실제로 건국이후, 제헌국회에서 좌우 균형을 추진한 중간파가 있었다. 이들은 자유와 평등과 자주라는 가치 아래 좌우 사이의 대화와 포용을 내걸었다. 비록 극우세력의 견제에 의해 중간파의 시도는 좌절됐지만 그 의의는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중간파의 명맥이 이어졌더라면 우리 정치사가 정책부재, 권력투쟁의 장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식민공간에서 해방과 독립에 노력한, 적어도 김 원봉, 김일성, 여 운영, 김 규식, 김 구, 조 만식, 이승만 등의 역할을 인정하는 열린 마음이 필요했다. 물론 그들의 공과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지만, 그들의 시대인식과 행동의 한계에서 우리는 역사의 교훈을 받아들여야 했다.
 분단 반세기 이상 지난 개명천지 아래에서 아직도 합리적 진보와 건전한 보수가 없을뿐더러 그들의 상생이 어렵다면 우리의 미래는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역사에서 무엇을 배웠는가.
 한국인들에게 한 가지 바람직스럽지 못한 습성이 있다. 고난의 세월을 겪으면서도 그 고난을 통한 교훈을 배우지 못했다는 것이다. 부모를 잘 만나서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엄청난 행운이다. 결코 누리고 있는 교육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기를 바란다.
 자신이 받는 것에 대해 깊이 감사하고 자신이 누리는 것을 훨씬 더 많이 사회를 위해 되돌려 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간에 적당히 대충대충 하지 말자. 열 가지를 해야 하면 20가지를, 20개를 해야 한다면 40개를 할 수 있도록 전성과 정력을 다하기 바란다. 자신이 쏟은 정성은 훗날 반드시 표가 나게 마련이 아닌가.
 인간은 스스로 결정하는 존재이다. 살아 갈 것인가? 받아들일 것인가, 거부할 것인가, 이 모든 것을 스스로 선택하는 존재이다. 산다는 것은 꿈을 꾸는 것이다. 꿈을 상실한 사람은 새가 두 날개를 잃은 것과 같다. 비록 힘이 없는 하찮은 존재라 할지라도 꿈을 가질 때 얼굴이 밝아지고 생동감이 흐르며 눈에는 광채가 생기고 발걸음은 활기를 띠고 태도는 씩씩해지는 것이다. 8월은 광복의 달이 아닌가. 우리 모두 보다 더 새로워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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