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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깊고, 가장 아름다운 ‘가정’ 
 취재부 | 기사입력 : 20-03-31 13:41
 
 
가장 깊고, 가장 아름다운 ‘가정’

궁금한 설 연휴 민심 밤하늘에는 수없이 많은 별들이 반작인다. 자그마치 20억 개나 된다니 지구는 그 중의 하나에 불과하다. 그 지구상에는 약 50억의 인구가 살고 있으니 이런 계산으로 하면 사람들은 20억 분지 1, 50억 분지 1의 나, 그래서 어렴풋이나마 ‘나’의 현재의 위치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의 생명은 1조의 세포가 모인 생명유기체라고 한다. 참으로 신기하고 신비스러운 고등동물이라 할 수 있다. 내가 살아있다는 것은 1조의 세포가 서로 싸우지 않고 움직여 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 몸에 1조의 세포가 있다니, 또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우주의 신비, 지구의 신비도 엄청난데 인체의 신비까지 겹쳐 도대체 무어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이유야 어떻든 ‘나’라는 존재는 이렇게 하여 현재 공간의 일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나’의 존재는 보잘 것 없는 것인가. 숫자상으로 보면 분명히 보잘 것 없는 존재인 것만은 사실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보면 그렇게 적은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위대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 같은 적은 존재가 지구를 떠받들고, 우주를 떠받들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는 어렸을 때 명절인 정초나 대보름날 밤에는 하늘을 쳐다보며 “별 하나 나 하나” “별 둘 나 둘” “별 셋 나 셋”하고 내 별을 정하지 않았던가. 나는 누구인가?’…이런 생각을 종종 해본다.
 광활한 우주속의 나의 존재는 도대체 무엇인가. 넓고 무한대의 우주, 우주속의 지구, 지구속의 대한민국, 대한민국속의 나, 이래서 우주속의 나의 존재는 싫어도 좋아도 공간적 존재로 남아 있는 셈이다. 올해 달력을 보면 1월 24일, 25일, 26일, 27일은 설날 연휴다. 설날을 맞으면 누구나 ‘효(孝)’를 생각하게 된다. 효(孝)는 백행지본(白行之本)이라고 하여 동양에선 도의(道義)교육의 근본으로 삼아왔다. 우리의 효경(孝經)에도 어버이를 사랑하는 사람은 남을 미워하지 않고 어버이를 존경하는 사람은 결코 남에게 오만하지 않는다고 했다. 효에 대한 이야기라면 우리의 과거역사 속에 산처럼 많다. 어버이를 목숨을 바쳐가며 섬긴 일화나 일생동안 어버이를 기쁘게 하기 위한 효자가 얼마든지 있다.
 그런데 요즘 우리 사회는 점점 진흙탕이 되어가는 느낌이다. 우리 민족처럼 화합이 안 되는 민족도 없다고 한다. 그래서 도의가 땅에 떨어졌다는 말을 많이 한다. 도의란 사람이 지켜야 할 가장 근본적인 예의(禮義)인데 이것이 땅에 떨어졌다는 것은 인류사회가 허물어지고 있다는 말과 같다. 예전에 유지됐던 부모와 아들딸의 사이, 남자와 여자의 사이, 노인과 젊은이의 사이가 점점 질서를 잃어가고 있다. 그뿐인가? 현대 젊은이들은 지금까지의 도의의 속박에서 해방된 기분으로 책임이 수반되지 않은 자유와 이익추구에만 혈안이 되고 있다. 요즘 사회의 타락을 개탄하여 “양심(良心)이 없어진 사회”라고 비평한다. 양심을 가지고 있는 인간들의 행동으로서는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 많은 동물적인 행동을 빗대는 말이다. 현실을 보라. 정치 경제 사회 등 각 분야가 폭력과 비리와 부정으로 얼룩져 불성(不誠)과 불경(不敬)과 불화(不和)가 심각하다.
 특히 양심이 흐려졌다. 나와 너와의 만남에서 성실의 대화가 단절되고, 신의의 질서가 무너지고, 존경의 유대가 끊어지고, 화목의 원리가 파괴된 것이다. 공정한 방법과 공정한 경쟁으로 공정한 이(利)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고 부정한 방법과 부정한 수단으로 부정한 이(利)를 취한다. 그뿐인가? 아들이 어버이를 거역하고, 학생이 선생에게 항거하고, 물질에 눈이 어두워 학교친구를 폭행하고, 보험금에 눈이 어두워 가족을 죽이는 따위의 비양심적인 행위가 비일비재 하다. 가정의 평화는 만인의 원(願)이다. ‘가족’처럼 흐뭇한 말이 없다. 가족은 3대관계로 구성된다고 어느 철학자는 말했다. 첫째는 부부관계요, 둘째는 친자관계요, 셋째는 형제 자매관계라고 했다. 피로 얽힌 혈족관계다. 피는 호르몬보다도 짙다. 인간의 액체 중에서 피처럼 강하고 진하고, 뜨거운 것이 없다. 그러므로 피로 얽힌 만남은 우리의 눈을 뜨게 한다. 형제애는 우애의 가장 이상적 형태가 아닌가. 부모, 형, 동생, 언니, 누나, 오빠의 관계는 인간의 사랑과 정의가 가장 깊고 가장 아름다운 것이다. 민족의 대이동이 시작되었다. 부모와 자식 간의 만남은 첫째 성(誠)의 원리요, 둘째는 경(敬)의 원리요, 셋째는 화(和)의 원리다. 올해 효(孝)의 수준은 어느 정도가 될 것인가? 흩어졌던 가족이 한곳에 모여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고 부모에게 세배를 드리며 덕담을 나눌 것이다. 특히 올해는 ‘선거의 해’다. 어른들과의 ‘덕담’은 어떤 말이 오고갈까? 설 연휴의 ‘민심’이 몹시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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