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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자의 고향 ‘아씨시’ 
 취재부 | 기사입력 : 14-12-08 10:52
 
 
1000자 세계일주 기행 에세이(13)*

1000자 세계일주 기행 에세이(13)*   
 
              성자의 고향 ‘아씨시’
 
오래 전 <종착역>이라는 영화가 꽤 유명했었다. 그 영화의 주무대였던 로마 테르니를 출발, 폴링요에서 기차를 바꿔 타고 이탈리아 중부 고원지대를 달렸다. 계속된 터널을 지나는 동안 사람들이 산 위에서 살고 있는 모습들이 내 눈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옆 자리의 노신사에게 물어보았다. 예전엔 전쟁이 너무 잦아 한시도 마음 놓고 들에서 농사를 짓거나 가축을 돌볼 수 없어 사람들이 하나 둘 산 위로 피난을 갔던 것이라고 설명한다. 중세 유럽의 전쟁 소용돌이가 농부들의 주거문화와 생존방식까지 바꿔 놓고 말았다는 얘기였다.
그렇게 2시간 반을 달린 끝에 닿은 목적지 아씨시(Assisi)는 인구 약3만의 소도시였다. 시대별로 건축된 사원과 성벽들이 아직도 전쟁의 상흔을 남기고 있었지만 종교와 예술의 성지답게 거리는 예스럽고 아름다웠다.
프란치스코 성인의 무덤 위에 세워진 ‘아씨시성당’은 높은 언덕 위에 있었다. 성인은 1181년 가을 이 곳의 포목거상(巨商) 아들로 태어나 일찍이 부와 명예가 부럽지 않은 처지였다. 18세 때 기사가 되고 싶어 뻬루지아 전쟁에 나갔으나 패전의 포로가 되었다. 1년만에 간신히 풀려난 뒤 중병을 치르면서 영적 고뇌에 빠졌고, 돌아온 탕자는 나병환자의 상처에 입을 맞추기 위해 머리를 깊이 숙일 만큼 그리스도를 닮고 있었다.
그런 프란치스코의 노력은 혼란했던 시대의 그 어떤 정치지도자보다 시민을 감동 시키기에 충분했고 사회안정을 위한 공감대를 일으켰으며 ‘복음적 삶의 메시지’를 통해 사회갈등 해소에 빛과 소금이 되었다.
삶을 사도적 활동에서 참회와 묵상으로 바꿨던 성자의 무덤에는 <사랑으로 가득하신 분>이라 쓰여 있었다. 영원히 꺼지지 않는 촛불 앞에 로마의 교황님조차 가끔씩 찾아와 홀로 묵상을 하고 가신다니 그 영성의 힘을 미뤄 짐작케 하고 있다.
그가 세상에 남긴 것이라고는 백 번도 더 기워 입었을 누더기 수도복 뿐, 그 청빈과 겸손의 자리엔 그러나 축복이 가득 넘치고 있었다. 종교와 이념을 초월한 범 지구촌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던 곳 아씨시! 해질 녘, 노을 진 성지의 모습이 한 장의 성화(聖畵)를 쏙 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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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티블루 14-12-08 12:52
답변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공간이 없어 이곳에 올립니다.금번 여성백일장 시부문 특별상 수상자 박진 입니다.11월 10일자 신문과 11월 17일자 신문 지면 8면상에 특별상 시 부문 수상자 동일인이 반복되어 실려 제 글이누락됨을 확인하고 이상해서 올립니다.다시 확인하여 올려주시기 바랍니다.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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