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흥성회장, 모형제작 대가 후학 양성 전념할 터

(인터뷰- 창립 45주년 맞은 기흥성회장)

국내 최대 건축 모형 전문기업 ‘주식회사 기흥성’

모형제작의 대가로 알려진 주식회사 기흥성의 기흥성회장(72)이 올해로 모형제작인생 45년을 맞았다.

1967년 9월, 구로동 무역박람회 계획 모형제작과 여의도 및 한강종합개발 계획 모형제작을 시작으로 국내는 물론 세계 각국의 모형을 제작해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기록을 남긴지 올해로 어느덧 모형제작인생 45년을 맞았다고 그동안을 회고한다.

서교동에 소재한 기흥성회장의 건물에 들어서면 백말 한 마리가 손님을 맞이한다. 건물 1층 입구부터 1~2층 작업실과 전시실, 천정까지 모두 세상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수 천점의 작품이 방문자들의 눈을 의심케 할 정도로 크고 작은 모형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다.

그야말로 ‘세상을 축소해 과거를 기록하고 미래를 만드는 작은 거인’이란 말이 저절로 나올 정도로 기흥성회장의 땀과 노력, 정성이 가득 담긴 국ㆍ내외 각종 보물(?)들의 축소된 모형 작품을 한 장소에서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전시한 국내 최대 건축모형 전문기업으로 잘 알려져 있다.

서교동 사무실에 국내 최대 건축모형 전문기업 답게 대한민국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제주 중문단지 모형부터, 잠실종합경기장, 18개월 동안 땀과 노력 정성을 다해 제작한 롯데월드 민속관, 영종도 국제공항, 현대제철소, 새만금지구 종합개발계획, 경북궁, 숭례문, 21세기 부산 미래상 도시모형, 행정중심복합도시, 왕인박사 기념관, 2014평창 동계올림픽시설 등 축소된 우리나라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조형물들로 가득하다.

또 두바이, 인도네시아, 그리스, 호주, 태국, 말레이시아, 러시아 모스크바 핸드폰 조형물은 물론 상해엑스포 미래관 설계 및 제작, 대련 소평도, 린이시 한국문화실, 중국 해사국 교통발전상 전시, 대련 고신원구, 산동성 덕주 운하경제발전구 전시관 모형 제작, 아랍에미리트 원전 등 세계 20여개 나라에 기흥성회장의 모형작품이 전시될 정도로 알려져 있으며 기네스북에 등재될 정도로 세계적인 모형제작의 성구자이기도 하다.

이처럼 세계적인 모형제작의 대가로 성장하기까지는 많은 어려움도 있었지만 그만의 고통이 있었기에 오늘이 있다고 말한다.

79년 전 집에 자동차가 있을 정도로 큰 부잣집에서 태어나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지만, 6.25일 새벽에 쾅쾅거리는 무서운 소리와 함께 무작정 부모님에 손에 이끌려 피난 갔던 때가 13살. 주위는 아비규환이었지만 곳곳에서 시체가 널려 있고 산모들이 길거리에서 아이를 낳고는 멍하니 앉아 있는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그 당시를 회상하며 말했다.

피난을 간 기 회장은 이 집 저 집을 전전하며 밥을 구걸하여 목숨을 이어왔지만 그때의 너무 힘든 고난을 겪어선 지 그 후 두 번 다시 이런 시련이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마음을 먹고 열심히 노력한 결과 ‘미니어처제작의 선구자’니 ‘모형제작의 대가’니, ‘손끝으로 또 다른 미래를 여는 사람’이라는 등 수 많은 수식어가 따라다녀 이젠 무에서 유를 창조한 최대 조형물 건축가로 기네스에 등재 되는 등 업계에서는 가장 유명한 인물로 평하고 있다.

지난 92년부터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해, 2004년 중국 북경 칭와대 초빙교수로 4년을 중국 학생들을 가르치며 국위를 선양한적 있는 그는 세계적인 명문대에 초빙받았다는 기쁨도 컸고 중국의 CCTV에서 수십 분을 촬영하며 큰 관심을 보였던 기쁨도 컸다고 말한다.

그동안 40년의 인생을 조형물에 바쳤지만, 조형은 나의 삶 그 자체라며 그것을 인정받은 것은 단순히 세계적인 대학에 초빙되었다는 것을 떠나 나 ‘기흥성’이란 존재를 세상이 인정해준 것이기에 그 어느 때보다 기쁘고 감격적이였다고 말한다.

“후학 양성에 전념할 계획으로 제2, 제3의 기흥성을 배출해 한국을 세계적인 조형대국으로 만드는 것이 마지막 꿈”이라는 기흥성 회장은 “회사 1~2층과 양평 작업실 등에 전시된 수 천점의 작품이 우리 마포구민들에게 선보였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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