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군 용강면 이었던데서 동명 유래 동막리는 옹기 제조하던 곳 많아 옹리

용강동은 이곳이 고양군 용강면 이었던데서 동명이 유래된다. 용강동을 이룬 동막리는 옹기를 제조하던 곳이 많았기 때문에 옹리라 하던 것을 동이를 만드는 곳이라는 뜻의 동막(東幕)으로 바뀌었다. 이곳이 동이를 제조하는 곳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은 조선 초기때의 문인 성현(成俔)이 지은 「용재총화(庸齋叢話)」에도 나오는데 "사람이 사용하는 도기는 질그릇을 말하는데 도성에서 소요되는 항아리 종류인 와기는 노량·마포 등지에서 나오며 이곳 사람들은 이 일로 인해 생업이 유지된다."하였다.

옹이 그릇은 젓갈종류나 김장을 하기 위한 그릇 뿐만 아니라 술을 빚어놓는 그릇으로도 사용했다. 동막 부근이 좋은 소주가 생산된다는 사실은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도 나타나는데 이에 의하면 공덕·옹막 사이에서 생산되는 약주의 진품인 삼맥주(三麥酒)는 양조법이 까다로워 일반소주와는 다른 맛을 내는데 수백 내지 수천독씩 빚어냈다고 한다. 이 삼맥주는 노란 빛을 띠는데 마시면 마치 이슬을 먹은 것처럼 산뜻하지만 그냥 두면 기름이 낀 것처럼 탁하다고 하였으며 오장에 특히 좋은 술이라 하였다.

용강동이라 이름지었던 까닭은 이곳의 마포강이 마치 용의 머리에 해당하는 곳이라는 풍수지리에 따라 지어진 이름이다. 149번지 일대에 있던 우물을 작은우물, 430번지 부근에 있던 우물은 큰우물이라 했는데 큰 우물은 동막사람 모두가 마실 만큼 수량이 풍부한 우물이었다. 작은 우물은 여름철 배탈이 났을 때 효과가 있었다고 하는데 톡 쏘는 듯한 맛이 있었다. 이로 보아 아마도 탄산성분이 함유된 것이 아닌가 한다.

용강동 335번지에는 서울시 민속자료 제17호로 1977년 3월17일 지정된 정구중(鄭求中)집이 있다. 이 가옥은 동향으로 배치된 구가형(口家形)집으로 안채, 행랑채, 별당이 따로 축조되어 있으며 안채뒤에 있는 별당은 전형적인 ㄱ자 집이다. 이 가옥은 도시의 제약된 좁은 대지 안에 전통적인 안채에 별당채까지 갖추어 오밀조밀한 깊은 맛을 보여주는게 특징이며 1920년대 이후 한식주택의 면모를 보여주는 개량한옥으로서 보기드문 예인 것이다. 이집에 들어서면 넓지 않은 마당에 측백나무, 철쭉, 목련, 장미, 소철, 사철나무, 난초롱이 있어 운치를 더해주는데 이집은 구한말 용강동의 부농인 이모씨가 무남독녀에게 주기위해 당시 장안에서 이름난 4대 목수중의 하나인 연영달씨를 시켜 지었다고 하며 목재는 압록강 유역의 홍송과 백송을 뗏목으로 옮겨와 한강에 2년동안 잠겨 놓았다가 1년간 건조한 후 못을 전혀 사용치 않고 지었다는 것이다.

용강동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토정길의 연변은 마포주물럭갈비가 처음 시작된 곳이다. 처음에는 전차를 이용한 승객들이 종점인 이곳에 내려 퇴근길에 주로 이용하던 주점의 술안주로 개발해낸 것인데 돼지고기의 특유한 냄새를 없애기 위해 몇가지 양념을 섞어 만들었다. 사람들의 입맛이 변함에 따라 마포주물럭갈비라는 대명사로 바뀌었고 재료도 점차 고급화되어 점차 쇠고기로 바뀌어지면서 마포를 알리는 명물로 바뀌어졌다.

토정길 북쪽은 옛날 지번 그대로이나 그 남쪽은 구획정리가 되어 비교적 반듯반듯한 모양새를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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