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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 유래...[상수동] 
 취재부 | 기사입력 : 20-06-23 10:29
 
 
조선시대에 상수일리였기 때문에 비롯 강가 위쪽 마을이란 뜻으로 붙여진 명칭

상수동의 동명은 조선시대에 이곳이 상수일리(上水溢里)였기 때문에 비롯된다. 상수동은 강가 위쪽 마을이라는 뜻으로 붙여진 명칭이며, 하수동은 그 아랫쪽 마을이라는 뜻이었다.와우산 서쪽 산록에 자리잡은 상수동은 1957년에 서교구획정리사업이 계획시행되기 전만해도 이 지역은 공동묘지였다. 1910년 이전에는 도성민의 시체처리장소였으나 일본인이 대거 거류하기 시작하면서 이 지역은 일본인 매장지로 바뀌게 되었다.
상수동 295-1번지 부근에는 점검청(點檢廳)이 있었다. 임진왜란 이후 수상 운행을 위한 검문소인데 삼남지방과 황해도지방에서 들어오는 공미를 점검하던 관청인데 후에 화물에 관세를 부과하였다. 「동국여지비고(東國輿地備攷)」에 의하면 양화도에 호조의 점검청이 있는데 선조 24년과 인조 14년에는 물이 얕아져서 배가 통과하지 못했는데 그곳에 속한 선박은 어영청(御營廳)의 배 10척이 있다고 하였다. 사재감재 혹은 사지감재는 상수동에서 하수동으로 넘어가던 고개인데 일설은 이 고개가 으슥해서 사자가 나타나서 해코지를 함으로 사람들이 모여다니는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또 하나는 공조의 소속관아인 사재감(司宰監)이 한성부 북부 순화방에 있으나 어류, 소금, 연료, 식육, 횃불 등을 공급하는 관청이 있는데 그 분견소 역할을 하던 곳이 이곳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곧 사재감이 있는 근방의 고개라 부르던 것이 변해서 사재감고개라 했다는 것인데 196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이고개에 서낭당이 있었으므로 사재감이 있었다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당우물 혹은 활터께 우물이라 부르는 곳이 상수동 328-9번지에 있었다. 한때 마포구 관내의 민방위 비상용 공동우물로 사용되었는데 집집마다 가정용 수도가 건설되지 않았을 때만 해도 이 우물의 효용도는 매우 높았다. 청일전쟁때 청나라군이 사용했다는 이 우물은 임오군란 직후 일본공사 화방의질(花房義質)의 1개 중대가 양화진에 대기하고 있을 때 성외 둔지방에 배치시켰던 청국군의 오장경 주력부대가 사용했다는 설도 있는데 이로보면 청나라군대에서 사용하였던 우물임을 알 수 있다. 이 우물은 창전동의 신당우물, 상수동93-20번지의 왜우물과 함께 서강 3대우물이라 할 만큼 유명하였고 많은 수량과 함께 물맛도 있었다. 지금은 폐쇄되어 사용되지 않으며 일본군이 주둔하면서부터 왜우물이라 했는데 일명 쌍우물로도 부른다. 그 까닭은 우물속에서 나오는 수맥이 두 개이므로 사실 2개의 우물을 만들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1개를 만들었기 때문이며 1개의 우물로 2개의 효과를 낸다는 뜻으로 쌍우물이라 하였다. 이 때문에 외우물이라는 표현도 하는데 언제부터 왜우물로 바뀌었는지 알 수 없다.
상수동은 강변에 위치하고 있는 까닭에 많은 정자와 별장 등이 있었다. 상수동 동사무소가 위치한 상수동 97번지에는 을사5적의 한사람인 외부대신 박제순의 99칸 저택이 있었고 그 안에는 평초정(坪楚亭)이라는 정자가 있었다. 을사조약에 찬성하여 주권을 일본에게 넘겨준 박제순의 이 저택은 공덕동의 아소당과 함께 유명한 건물이었으나 6·25동란 때 폭격으로 소실되었다. 간동에 본가를 둔 박제순이 경치좋은 한강가에 별장을 짓고 별장의 이름을 지으려고 고심하고 있던 중 이등박문을 이곳 별장에 초대하여 연회를 베풀고 난 후 환담을 나누다가 문득 그에게 별장 이름을 지어줄 것을 요청하자 이등박문은 백성을 평정한다는 뜻으로 평초(平草)라고 하였다. 옆에 같이 참석했던 이근택과 이완용도 좋은 뜻이라며 그렇게 불렀으나 훗일 박제순 자신이 평초(坪楚)로 바꾸었다고 한다.
한일합방 이후 그 공로를 인정받은 박제순은 일본으로부터 작위의 칭호를 받았으나 이완용 습격사건 등 항간에서 을사매국노의 규탄소리가 높아지자 불안해하며 죽을 때까지 평초정에서 지냈다. 평초정은 6·25동란으로 소실되었으며 을사5적으로 규탄받았던 까닭으로 인해 박제순의 후손도 끝까지 평초정을 소유하지 못하고 일부 매각하고 일부는 그대로 두는 바람에 폐허화 되었다가 1960년대 이후 정비되어 주택으로 바뀌었다.
내시별장(內侍別莊)이라고도 부르던 영은정(永恩亭)은 하수동 110,111번지로 상수동 354-12번지, 지금의 쌍용제책사 자리에 고종 때의 내시 나익진(羅翼鎭)이 세운 별장인데 1971년 강변도로를 건설하면서 대부분 철거하였다. 그외 약수정·풍벽정·호인정·연정·소파정·팔관정 등 많은 정자 이름이 있으나 위치나 흔적·소유 등을 찾아볼 수 있는 관련 기록이 없다.
주변에는 양화진지, 왜우물, 내시별장, 당움루, 부군당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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