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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 유래....아현동 
 취재부 | 기사입력 : 21-03-30 11:38
 
 
아현(阿峴) 혹은 아이고개ㆍ애고개라해서 아현중고등학교자리는 할인서(活人署)

아현동은 아현(阿峴) 혹은 아이고개ㆍ애고개라고 부르던 고개가 있어서 동명이 유래되었고 서소문밖에 위치하였다.
 도성 4대문과 그 사이의 4소문 가운데 사람이 죽으면 시신을 성밖으로 갖다 버리는데 사용하는 문은 주로 서소문(西小門)과 광희문(光熙門)인데 이 가운데 서소문은 서북쪽 지역 사람들이 주로 이용하며 광희문은 동남쪽 지역 거주민들이 주로로 이용하였으므로 일명 시구문(屍口門) 혹은 수구문(水口門)이라고도 하였다.
 서소문 밖의 시체매장지는 만리재ㆍ애고개와 와우산 등이 이용되었고 이 가운데서도 애고개는 특히 아이들 시체를 많이 매장했기 때문에 명칭이 붙었다. 그런가 하면 만리재가 너무 길고 높아서 마포나루 쪽으로 가자면 한나절 이상은 족히 걸리므로 이보다 서북쪽에 있는 작은 고개를 넘기가 쉽다는 뜻으로 만리재를 큰고개라 한데 비해서 아이 만큼이나 작은고개라는 뜻에서 불렀던데서도 연유되었다.
 아현동에는 우물도 많이 있었는데 이는 수맥이 북악에서 아현을 지나 복개된 창전로쪽으로 지나기 때문이다. 이에따라 103번지에는 말똥우물이, 양정중고등학교 뒷산에는 삼태우물, 서아현파출소 앞에 파마우물, 산8번지에 쌍우물, 소의초등학교 후문께에 까치물이 있었고 너럭바우 밑에는 너럭바우샘이 있었으며 그외 호박밭 약물터ㆍ회나무우물도 있었다.
 한편 아현동에는 활인서(活人署)가 있었다. 아현동 267번지·281번지 일대로 아현중고등학교ㆍ아현직업학교ㆍ아현초등학교 자리이다. 고려시대의 동서대비원(東西大悲院)제도를 이어받아 1414년9월에 활인원(活人院)으로 개칭하면서 기구를 강화하였다. 그후 실질적인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여 유명무실하던 것을 영조때 부활시켜 활성화되었는데 1882년에 폐지되고 그 후 이사업은 혜민서(惠民署)업무와 통합되면서 제중원으로 이어졌고 다시 1905년에 설립된 대한적십자병원으로 계속되었다.
 아현동의 풍습으로는 매년 정원 보름에 행하던 석전(石戰)을 들 수 있다. 변전(邊戰) 혹은 편싸움이라고도 하는데 돌이나 몽둥이를 들고 싸우는 싸움이다. 삼문(三門)밖과 아현 사람들이 서로 무리를 이루어 쫓고 쫓기면서 행하는 일종의 풍습인데 삼문밖의 주민이 이기면 서울부근에 풍년이 들고 아현이 이기면 8도에 풍년이 든다고 해서 삼문밖의 사람들도 아현쪽으로 붙어 아현패가 이기도록 하였다. 도성과 마포나루가 이어지던 길목에 있던 아현을 전국을 대표하는 지명으로 보았던 것이다. 이 싸움의 함성으로 천지가 진동하는데 싸움에서 혹시 부상을 했다 하더라도 상관치 않았고 지나가는 사람들도 어느쪽에서도 변상을 받을 수 없었기 때문에 아예 정월 보름날은 다른길로 피해서 다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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